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1년 내내 부지런히 손을 놀린 농민들이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풍요로움에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미소가 사라지고, 근심 걱정에 주름살만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끝없이 떨어지는 쌀값과 전국 곳곳에서 수확을 하지 않은 벼를 갈아엎는 농민들의 시위 소식에 칠순을 앞둔 농부의 시름 깊은 얼굴을 보며 농촌의 미래를 걱정하게 됩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9월 5일 현재 쌀 80kg에 175,368원입니다. 작년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을 거부하면서 약속했던 20만 원에 훨씬 못미치는 금액입니다. 벼값으로 환산하고 경기미를 비롯한 타지역과의 차이를 생각하면 40kg 한 가마니에 5만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일찍 수확을 한 조벼가 5만 3천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추석 지나 본격적 수확기가 되면 5만원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농민단체들의 호들갑이 아닌 곧 닥쳐올 현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직도 농협창고에는 작년 나락이 쌓여 있습니다. 올해 우리 지역 농협의 벼로 인한 손실 혹은 손실 예정 금액이 29억 원이 넘을 것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쌀과 관련한 모든 지표들이 최악의 상황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쌀값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 정부의 잘못된 양곡정책과 해마다 거르지 않고 들어오는 40만 8천 톤의 수입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앙정부는 언발에 오줌누기식으로 시장격리 혹은 사료용으로 사용 등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정부 발표가 있으면 쌀값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과감한 시장격리 조치와 의무시장격리를 핵심으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에 동의해야 합니다. 쌀수입을 중단하거나 들어온 수입쌀을 사료용으로 완전히 격리시켜야 합니다. 이런 통큰 결단이 있어야 쌀값 하락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중앙정부의 나오지 않는 대책을 기다리다가는 농민들의 파산이 훨씬 빠르고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전라남도, 영암군도 생산비 지원이나 장려금 지급 등의 가능한 최대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중앙정부의 교부금 삭감 등으로 영암군의 재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올해 농민들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서 신속하고 과감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런 정책과 지원을 경쟁력 없는 쌀산업에 투자하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폄훼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쌀이 남아돌고, 쌀소비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하는 농가에 지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쌀농사는 단순히 산업이나 시장 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습니다. 농민들 중 쌀 생산 농가는 아직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5년간 평균 쌀 자급률은 94.3%에 불과합니다. 쌀은 국민의 식량입니다. 식량주권이 무너진 나라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쌀농사가 무너지면 농업 전체가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우리 사회입니다. 그래서 쌀농가에게 지원하는 것은 우리 농업의 기본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최소한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한가위 명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족과 고향을 찾아오는 자식 손자들을 맞이하는 농민들의 얼굴에 걱정과 시름이 아닌 함박웃음이 멈추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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