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화 강국의 길, 균형 발전의 길"지방정부는 경제ㆍ행정기관을 넘어 ‘지역 문화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 세계를 움직이는 문화국가, 한국 21세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작은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정치ㆍ경제적 성취보다도 문화적 영향력에서 진정한 위상을 드러낸다. K-팝이 글로벌 무대를 흔들고, K-드라마가 대륙을 건너며, K-무비는 세계 영화제에서 강력한 빛을 발한다. 세계인의 감수성을 흔드는 문화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사회를 이해하며 한국에서 미래를 찾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이 현상은 일시적인 유행의 확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글의 과학성, 한국인의 빠른 적응력, 치열한 자기 혁신, 그리고 민주적 역량이 만들어낸 복합적 성취다.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APEC 회담과 난해한 외교ㆍ통상 환경 속에서 흔들림 없이 대응한 정부의 역량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금 세계인은 한국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우리 자신보다도 훨씬 더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세기 이후, 근대국가가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역사적 굴곡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외세 지배, 독립 투쟁, 영토 분단, 민족 내전, 군사 반란, 독재 탄압, 그리고 민주 회복 등 서구의 수백 년 근대를 단 100년 만에 농축된 서사로 통과한 국가다.”라는 김누리 교수의 견해처럼, 우리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민주주의 회복 탄력성을 증명했으며, IT와 문화 강국의 자리에 올라섰다.
■수도권 1극 체제의 한계와 ‘5극 3특’ 전략의 의미 문화ㆍ과학ㆍ산업 모든 분야에서 잠재력을 가진 나라가, 정작 국토 공간 구조에서는 왜 이토록 불균형을 겪고 있을까. 수도권 1극 체제는 전 국토의 균형을 비틀어 놨다. 마치 팔다리는 온전하지 않으면서, 심장만 펄펄 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비대한 심장이 온몸의 생태계를 자멸하게 하고 있다. 같은 규모의 아파트가 서울 강남과 지방 중소도시에서 20배가 넘는 가격 차이를 보이는 현실은, 정상적인 시장 질서라 할 수 없다. 교육은 과열 경쟁의 소용돌이에 갇혔고, 의료ㆍ교통ㆍ환경 등 삶의 기반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가 제시한 ‘5극 3특’ 국토발전 전략은,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국토 공간의 리셋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5극(五極)은, 대한민국을 5개의 광역 성장축으로 재편하여 수도권에 몰린 기능을 전국으로 분산시키는 공간 전략이다. 산업, 교육, 교통, 의료, 문화 기능을 각각의 권역별 특성에 맞게 재배치함으로써, 다섯 개의 자립적 경제ㆍ문화 중심을 구축하는 구상이다. 둘째, 3특(三特)은, 각 권역의 특성과 잠재력에 따라 핵심 산업ㆍ교육ㆍ인재 양성 축을 ‘특화’해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다. 즉, 성장 축이 행정구역 구분이 아니라, 미래산업과 일자리 창출의 중심이 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가령, ‘서울대학교 10개 만들기’ 정책은 똑같은 대학교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5극의 권역마다 ‘세계 수준의 연구ㆍ교육 클러스터’를 설치해, 그 지역이 스스로 산업과 인재를 끌어들이는 자생력을 갖도록 하는 장기 구상이다. 예컨대, 광주ㆍ전남권은 햇볕이 풍부하고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이미 축적되어 있어 신재생에너지 메가 클러스터로 성장할 토대를 갖추고 있다. 부산ㆍ경남권은 북극 항로 시대를 대비한 해양 물류ㆍ항만 산업의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국토의 각 지점에 ‘문화와 산업의 중심’을 다섯 개 이상 만드는 일은, 수도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확장하는 전략이다.
■지방정부의 역할: 미래를 여는 장기적 식견 국가 전략이 아무리 잘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실질적인 변화는 항상 지역에서 출발한다. 균형 발전의 성공 여부는 지방정부의 선택과 용기에 달려 있다. 지역의 산업 구조, 교육 생태계, 문화 자원은 중앙정부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스스로 설계해야 하는 영역이다.
지방정부와 기초자치단체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특화 산업의 방향성을 스스로 제시하는 일이다. 어떤 산업을 선택해야 지역의 미래가 열리는가를 긴 호흡으로 판단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매달리면 도시의 운명은 소멸 위험으로 흐른다. 둘째, 교육ㆍ문화 생태계를 산업과 연결하는 일이다. 지역 대학이 산업과 연계되는 시대를 만났다. 대학은 지역의 연구소이자 실험실이자 문화의 심장부다. 지역 발전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며, 인재는 교육에서 나온다. 셋째, 지역의 정체성과 품격을 만드는 일이다. 도시의 미래는 경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도시의 문화, 예술, 공간, 공동체가 조화로울 때 사람들은 그곳에 머무르려 한다.
지방정부는 경제ㆍ행정기관을 넘어 ‘지역 문화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각 단체장은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10년~30년 후의 큰 지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균형 발전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윤리적 결단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5극 3특’ 정책과 연계할 지역의 구체적인 정책 개발에 나서야 한다. 서울에 몰려 있는 기능을 전국으로 나누는 일은 ‘대체재의 분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량을 강화하는 작업이다. K-컬처의 물결이 세계를 움직이듯, 이 에너지가 모세혈관을 타고 전국으로 흘러야 한다. 온 국토가 살아서 제 기능을 할 때, 우리는 미래 선진형 국가라는 거대한 교향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영암군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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